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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특집] 실버천사 김성공 할아버지를 기억하시나요?

설 명절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화천 장례식장 봉안당을 찾았습니다. 몇 해 전 장인어르신을 이곳에 모신 뒤, 명절이나 기일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발길이 향합니다.

봉안당 안에는 각기 다른 삶의 흔적이 고요히 놓여 있습니다. 환하게 웃는 가족사진, 정성껏 마련한 꽃다발, 손글씨로 적은 짧은 편지…. 그 앞에 서면, 이곳에 잠든 분들이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해 어느날, 유독 발길이 멈춘 한 자리 앞에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 분의 유골함 앞에는 사진도, 꽃도, 편지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늘 비어 있었고, 그래서 더 깊은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허전한데, 사진이라도 하나 놓아드리면 좋겠어.”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막막해졌습니다. 가족도, 남겨진 사진도 없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15년 전,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썼던 기사 속 주인공. 바로 김성공 할아버지였습니다.

폐지로 모은 200만 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기부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홍보업무를 맡고 있던 제게 상서면 복지계장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다목리에 폐지 주워 생활하시는 어르신이 계신데, 어렵게 모은 200만 원을 아이들 공부에 써 달라며 가져오셨어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노인이,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김성공 할아버지는 가족 없이 홀로 살며, 매일 스쿠터를 타고 마을을 돌며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를 버텨온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내놓으신 것입니다.

이 사연은 곧 기사로 전해졌고, 언론은 할아버지에게 ‘실버천사’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그냥 조용히 아이들한테 쓰면 되지, 뭐 그리 떠들썩하게 하나.”

수줍은 웃음 뒤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기쁨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성공 할아버지

설날, 그리고 기적처럼 찾아온 온기

8개월 뒤인 2011년 2월, 설 명절을 이틀 앞두고 할아버지를 다시 찾았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화천 쌀국수를 들고 다목리의 허름한 집을 찾았습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 안에서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셨습니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 시절, 가족과의 인연이 끊어진 사연, 그리고 혼자가 된 뒤 폐지를 주우며 버텨온 시간들. 그 이야기를 기사로 써 오마이뉴스에 실었습니다.

설 명절과 맞물린 기사에는 놀라운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네이버 메인에 오르며 하루 만에 조회 수 60만 회를 넘겼고, 전국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모였습니다.

성금을 보내는 사람, 생필품을 전하는 사람, 심지어 미국에 사는 교민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언론이 가진 힘, 그리고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너무 이른 이별

그러나 이 기적 같은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우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의 사고였습니다.

다목리 마을 이장님과 주민들이 장례를 치러 드렸고, 할아버지는 화천 장례식장 봉안당에 모셔졌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삶은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설을 앞두고 다시 찾은 봉안당에서, 유골함 앞에 붙은 작은 쪽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금년도 사용기간 만료 예정입니다.’

2011년 5월에 모셨으니, 올해 5월이면 15년 안치 기간이 끝난다는 뜻입니다. 살아 계실 때도 외로웠던 분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또다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김성공 할아버지 생전 모습
실버천사 김성공 할아버지 생전 모습

떠난 뒤에도 이어지는 외로움

김성공 할아버지는 평생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노인이 세상을 위해 내놓은 200만 원, 그 돈에는 평생의 고단함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봉안당에서는 다른 영혼들과 함께하며 외로움이 조금 덜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을 떠나면, 다시 세상을 떠도는 외로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그분의 삶 또한 조용히 사라질 것입니다.

20만 원, 다시 한 번의 기적을

혹시 김성공 할아버지를 위해 20만 원의 작은 정성을 나눠주실 분이 계실까요? 20만 원이면 봉안당 사용 기간을 15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이면, 할아버지에게 다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며,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표가 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어떤 이름은 오래 남아야 합니다. 폐지를 주워 아이들의 미래를 밝힌 실버천사 김성공 할아버지. 이 설날,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주시길 바랍니다.

뜻이 있으신 분께서는 화천군 장례식장 봉안당(033-441-2315) 또는 화천군청 주민생활지원과 노인복지담당으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설날, 혼자였던 한 노인의 삶을 잠시만 떠올려 주십시오. 그리고 작은 마음 하나를 보태 주십시오. 그 작은 나눔이, 또 하나의 기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