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정원, 빨간사과는 무슨
누구나 한 번쯤은 도시의 소음과 복잡함을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서 평화로운 삶을 꿈꿉니다. 내게 그 꿈은 바로 전원주택 정원의 빨간사과였습니다. 상상 속의 전원생활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푸른 잔디밭을 거닐고, 창문 밖으로는 싱그러운 빨간사과가 달린 풍경. 그런 로맨틱한 환상에 푹 빠져 집 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이며 거실의 소파를 고민하고, 주방의 동선을 구상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에는 늘 정원이 자리했습니다.
파란 잔디 위에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그 아래 하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은 그야말로 ‘유럽 감성’ 그 자체였습니다. 2020년, 마침내 집이 완성되던 날, 저는 스스로를 ‘현대판 농부’라 칭하며 벅찬 가슴을 안고 전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잔디를 깔고, 한쪽에는 심혈을 기울여 고른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과나무와 고양이의 기묘한 동거
1. 빨간사과의 꿈 그리고 현실
사과나무를 심고 난 후, 매일매일이 설렘의 연속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사과나무 관리법을 찾아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꼼꼼히 읽으며 마치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나무를 돌봤습니다.
마침내 3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찾아온 봄, 사과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작은 콩알만 한 열매가 맺히고, 그것이 대추만 해지고, 자두만 해지더니 마침내 아기 주먹만 해졌을 때는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하고 외쳤습니다.
9월, 가을이 성큼 다가오자 시장에는 탐스러운 ‘빨간홍로’ 사과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사과나무에 달린 열매들은 어찌 된 일인지 시커멓고 거뭇튀튀했습니다. 붉은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양은 마치 돌배를 닮았습니다. ‘혹시 병든 묘목을 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과수원 전문가의 진단
고민 끝에 저는 과수원을 운영하는 지인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빙긋이 웃으며 딱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사과는 말이야, 농약을 최소한 세 번은 쳐야 제대로 된 색과 맛이 나와. 무농약 사과? 웃기지 말라고 그래!”
‘농약’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습니다. 우리 전원주택 정원은 이미 길고양이 왕국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한두 마리씩 기웃거리던 녀석들에게 매일 사료를 챙겨주었더니,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수십 마리가 우리 집을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면 쪼르르 줄지어 앉아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 떼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고양이 마을의 촌장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오늘 간식은 뭐냐?’라고 말하는 듯한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외면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3. 빨간사과 나무 vs 고양이, 피할 수 없는 선택
과수원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농약을 쳤다가 혹시라도 순진한 고양이들이 사과나무 아래에 떨어진 농약을 핥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했습니다. 아름다운 빨간 사과가 주는 로맨틱한 풍경과, 털복숭이 고양이들이 평화롭게 뛰어노는 모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사과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지만,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 사과 포기하자. 우리집 정원은 이제부터 고양이들을 위한 왕국이다!’ 결국 사과나무를 베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빨간사과 포기로 얻은 길고양이들의 행복
며칠 뒤, 사과나무를 베어냈습니다. 꿈꾸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평화로웠습니다. 사과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고양이들을 위한 또 다른 새로운 공간이 마련했습니다.
사료와 물그릇은 물론, 푹신한 방석과 작은 집까지 놓아주었습니다. 이제 정원은 빨간사과 대신 고양이들의 털복숭이 꼬리가 흔들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과의 색깔이나 맛을 걱정할 필요도, 혹시라도 농약에 고양이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가끔은 ‘빨간사과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밖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잠든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아쉬움은 금세 사라집니다.
때로는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그 꿈을 내려놓고 얻는 더 큰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비록 빨간사과의 꿈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정원은 수많은 고양이들의 평화로운 안식처가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원했던, 진짜 전원생활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