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 안보전시관에 6·25 전쟁 유물을 기증해 주십시오
파로호 안보전시관이 보다 쾌적한 환경으로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글은 가정에 보관하고 계신 선조들의 6.25전쟁 관련 유물 기증에 대한 칼럼입니다.
서랍 속 전쟁의 기억, 다시 세상으로
할아버지의 낡은 군화 한 켤레, 녹슨 군번줄, 빛바랜 계급장, 긁힌 자국이 가득한 낡은 밥그릇 하나.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집 다락방 구석, 오래된 나무상자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 가족의 역사이자, 이 나라의 역사이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비극의 증거물들이 말입니다. 강원도 화천군이 파로호 안보전시관 리모델링을 추진하면서, 6·25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생활용품과 군용 물품 기증을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그 요청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 이것이 우리 모두의 일인지를, 그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파로호, 그 이름에 담긴 핏빛 역사
강원도 화천. 서울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나타나는 이 조용한 산골 마을에는 ‘파로호(破虜湖)’라는 이름의 커다란 호수가 있습니다. 파로호.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입니다.
1951년 5월, 중공군 제63군은 6만 명의 병력으로 화천 일대를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습니다. 국군 제6사단 장병들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흘간의 처절한 전투 끝에 적군 2만 4천여 명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두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 호수에 친히 ‘파로호’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그 물속에는 지금도 그날의 함성과 울음이 함께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바로 그 파로호 옆에서 군복무를 하는 젊은 장병들 중 상당수가 파로호가 어디에 있는지, 그 이름이 왜 그런 이름인지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파로호 주변에서 훈련을 하면서도, 그 호수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모른 채 전역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무지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 숫자가 말하는 것들
파로호 안보전시관의 군 장병 안보교육 참여 현황을 보면 놀라운 변화가 눈에 띕니다. 2023년에는 28회, 1,211명이 다녀갔습니다. 2024년에는 31회, 1,834명. 그리고 2025년에는 55회, 무려 3,251명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단 2년 만에 참여 인원이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입니다.
15사단 장병이 전체의 절반, 7사단이 30%, 기타 부대가 20%를 차지합니다. 이들은 20분짜리 간단한 브리핑부터 1시간짜리 심층 강의까지, 부대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 역사의 현장을 배우고 있습니다. 파로호 전투와 화천댐 탈환을 위한 화천 전투, 이 땅에서 실제로 벌어진 전쟁의 기억을 말입니다.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이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현역 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총을 들고 국경을 지키는 청년들이, 왜 자신들이 여기 서 있어야 하는지를 배우러 오는 곳. 그곳이 파로호 안보전시관입니다.

비어 있는 진열장,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최문순 화천군수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장병들과 학생들이 보다 쾌적하고 생생한 환경에서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전시관 리모델링을 결정했습니다. 더 넓고, 더 잘 정비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의 무기류, 탄약, 군사 장비 등은 아무리 작은 파편 하나라도 국방부의 정식 승인 절차를 거쳐야만 전시가 가능합니다. 합당하고 당연한 규정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전시관의 내용을 풍부하게 채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당시 군인들이 입었던 군복, 발에 신었던 군화, 가슴에 달았던 계급장, 목에 걸었던 군번줄, 식사할 때 쓰던 밥그릇과 숟가락, 편지를 쓰던 군용 노트, 사진 한 장, 훈장 하나. 이런 생활용품들은 화천군청의 간단한 기증 절차를 통해 바로 전시가 가능합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어딘가에 그런 물건들이 있습니다. 주인을 잃은 채, 혹은 주인은 떠났지만 가족들의 손에 소중히 간직된 채, 조용히 세월을 버티고 있는 유품들 말입니다.
할아버지의 군번줄이 손자에게 전하는 말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의 나이에 총을 들고 이 땅에서 싸웠습니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고, 따뜻한 겨울옷도 없이, 영하 수십 도의 강원도 산악 지형에서 버텼습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고, 어쩌면 차가운 땅 위에서 젊음을 마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남기고 간 유품 하나하나는 단순한 낡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였고, 이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흔적이었습니다. 숟가락 하나에도 전쟁터의 밥 한 끼가 담겨 있고, 계급장 하나에도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수백 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지금 Z세대 청년들에게 필요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나, 스마트폰과 함께 자라온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6·25는 교과서 속 활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숫자로만 기억되는 전사자 수, 지도 위의 전선 이동, 그것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군가가 신었던 낡은 군화, 실제로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군번줄을 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달라집니다. 역사가 숫자에서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기증, 그것은 기억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걸 기증해버리면 가족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다락방 구석에 방치된 유품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세월이 지나면 버려지거나, 이사 과정에서 잃어버리거나,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져 그냥 헌 물건으로 처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시관의 진열장 안에 놓인 유품은 다릅니다. 그것은 앞으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수만 명의 눈에 보여지고, 수만 명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화천군은 기증하신 분들의 이름을 원하시는 경우에 한해 전시품 아래에 새겨 영원히 기억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 물건은 ○○○의 가족이 기증했습니다.” 그 한 줄의 문장이, 여러분 가족의 역사를 영원히 이 나라의 역사 속에 새기는 일이 됩니다. 장병들이 그 유물 앞에 서서 기증자의 이름을 읽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그 이름을 볼 것입니다. 그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이 나라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지금 당장, 집 안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혹시 다음과 같은 물품이 가정에 보관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6·25 전쟁 또는 그 전후 시기에 사용된 군복이나 군모, 전쟁 당시 또는 그 전후의 군화나 각반, 계급장이나 부대 마크, 인식표(군번줄), 철모나 수통, 군용 식기류(밥그릇, 숟가락 등), 당시 군인이나 가족이 주고받은 편지나 엽서, 군복무 관련 사진이나 앨범, 훈장이나 표창장, 그 외 6·25 전쟁 시기와 관련된 모든 생활용품.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지금 바로 화천군 파로호 안보전시관에 연락해 주십시오. 기증 절차는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화천군청의 간단한 접수만으로 충분합니다. 직접 방문이 어려우신 분은 전화로 먼저 상담하시면 됩니다.
문의: 033-440-2563 파로호 안보전시관
이것은 화천군만의 일이 아닙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은 강원도 화천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관이 전하는 이야기는 화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싸웠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부산에서도, 인천에서도, 서울에서도, 그리고 바로 이 화천의 파로호에서도.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만 있을 뿐, 평화협정은 없는 나라. 우리는 여전히 그 역사 위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기억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향수가 아닙니다.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총을 들고 서 있는 청년 장병들이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 내일의 세대가 이 땅의 값어치를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기증 운동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상상해봅니다
어느 집 다락방에, 낡은 나무 궤짝 하나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과 녹슨 군번줄, 그리고 손때가 묻은 작은 숟가락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입니다.
할머니는 평생 그 궤짝을 열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파서. 손자가 군에 입대하는 날, 할머니는 처음으로 그 궤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손자의 손에 군번줄을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네 증조할아버지도 이걸 하고 싸웠단다. 잊지 마라.”
그 군번줄이 지금 파로호 안보전시관의 진열장 안에 놓여 있다면 어떨까요. 수천 명의 장병들이 그 앞을 지나치며 그 이름을 읽는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이 나라 모든 가족의 이야기가 됩니다.
기증 문의는 033-440-2563 파로호 안보전시관으로 해주십시오.
여러분의 기억이 이 나라의 역사가 됩니다.
여러분의 유품이 다음 세대의 교과서가 됩니다.
여러분의 참여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게 하는 작은 씨앗이 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잊혀지지 않도록, 함께해 주십시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