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세상읽기이슈

파로호의 진짜 이름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

강원 화천의 파로호는 전쟁과 평화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최근 ‘대붕호’라 부르며 중국을 추종하는 이들이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파로호와 대붕호, 두 이름이 얽힌 역사적 진실을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흔히 알려진 ‘대붕호’의 진실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파로호(破虜湖). 평화의 상징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파로호의 이전 이름이 대붕호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론 기사나 인터넷 상에서도 종종 그렇게 표기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1985년, 평화의 댐 건설 과정에서 화천댐 물을 전량 방류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몰지에 묻혀 있던 유물과 전쟁 당시의 포탄, 생활 도구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파로호의 과거와 관련된 결정적 증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대붕호 표지석’이라 불린 돌비석입니다.

1944년, 일본이 세운 표지석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昭和十九年十月竣功 大䳟堤 朝鮮電業株式會社.” 소화19년10월준공 대䳟제 조선전업주식회사.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쇼와(昭和) 19년’이라는 기록입니다. 일본의 연호 체계에 따르면, 쇼와 원년은 1926년입니다. 계산식은 ‘연호 숫자 + 1925’, 따라서 쇼와 19년은 1944년에 해당합니다. 즉, 이 댐은 1944년 10월에 준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공 주체가 ‘조선전업주식회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력 사업을 총괄하던 일본 기업으로, 한반도의 전력 수급을 일본 본토의 전쟁 수행을 위해 수탈하는 데 동원되었습니다. 결국 화천댐은 조선인의 삶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였던 셈입니다.

‘대붕호’가 아닌 ‘대䳟제’

많은 사람들이 이 비석의 글자를 보고 ‘대붕제(大鵬堤)’라고 읽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독(誤讀)에 불과합니다. 비석의 가운데 글자는 ‘鵬(붕)’이 아니라 ‘䳟(초명새 명)’입니다.

鵬은 장자(莊子)에도 등장하는, 봉황처럼 크고 신비로운 새를 뜻합니다. 날개를 펴면 구만리를 날아간다고 하여, 그 상징성은 장엄합니다. 실제로 파로호 인근에는 ‘구만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이는 ‘붕이 한 번 날개짓으로 구만리를 난다’는 전설과도 연결됩니다. 주민들은 이 붕새 전설을 공유하며 마을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鵬이 아니라 䳟입니다. 초명새(䳟)는 중국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울음소리가 장엄하다’고 묘사될 뿐 붕새처럼 대륙을 가로지르는 신비의 존재는 아닙니다.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왜 일본은 ‘䳟’을 택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의도적으로 ‘鵬(붕)’ 대신 ‘䳟(초명새 명)’을 선택했을까요? 단순히 담당자의 무지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일제는 ‘대붕’이라는 장엄한 이름이 조선의 한 호수에 부여되는 것을 꺼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붕’이라는 이름은 희망과 기상을 상징합니다. 일제가 식민지배하에 놓인 조선의 상징적 지명에 그런 의미를 허락할 리 없습니다. 대신, 상대적으로 모호하고 상징성이 약한 ‘초명새’를 택해 ‘대䳟제’라 이름 붙였던 것입니다. 이는 조선의 정체성을 축소하고 억압하려 했던 일제의 문화적 침탈 행위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빼앗긴 땅의 역사

이와 유사한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파로호 인근의 웅장한 산 이름은 원래 ‘해산’이었습니다.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며 선조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일제는 태양을 뜻하는 ‘해(日)’를 천황의 상징과 동일시하며 조선 민중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산 이름은 ‘일산(日山)’으로 바뀌었고, 지금도 일부 노년층은 이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변경이 아닙니다. 식민지배는 조선인의 삶의 터전과 언어, 문화, 정체성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대䳟제’라는 표기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堤’와 ‘湖’, 그 차이

비석의 명칭에는 호수를 뜻하는 ‘湖’가 아닌 제방을 뜻하는 ‘堤’가 쓰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일제가 조선을 얕잡아 본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화천댐 바로 옆에 세워진 표지석임을 고려하면, ‘堤’는 단순히 댐 자체를 가리킨 표현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호수 이름이 아니라 댐 이름을 표기한 것이지, 호수를 낮춰 부르려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파로호

파로호의 역사적 의미

그러나 어떠한 이름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호수의 정식 명칭은 ‘파로호(破虜湖)’입니다. ‘오랑캐를 크게 무찔렀다’는 뜻을 지닌 이 이름은 한국전쟁의 치열했던 격전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입니다. 실제로 파로호 전투는 6.25 전쟁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호수는 민족의 희생과 자존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로호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근현대사가 남긴 아픔과 동시에, 이를 이겨낸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맺음말: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것

작은 글자 하나가 역사를 왜곡하기도 하고, 되살리기도 합니다. 대붕호라는 이름은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일본의 왜곡과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옛 명칭을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직시하고, 왜곡된 이름을 바로잡아 진실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파로호는 언제나 파로호였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희생을 기억하는 이름이자, 민족의 자존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지명을 지킨다는 것은 역사를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석 속 작은 한 글자에 담긴 교훈은, 우리가 왜 올바른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굳이 대붕호라 부르며 중공군 제사를 올리는 중국 추종 세력들이 이 사실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