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이 증명하는 지방 교육 혁신의 가능성
지난 4월 30일, 아동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은 1년에 걸쳐 공공데이터 8만 7,851개를 전수 조사한 ‘대한민국 아동성장환경지표’를 발표했습니다.
결과는 이미 많은 이들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국 1위는 경기 과천시가 서울 강남권을 제치고 차지했고, 상위 10곳 중 9곳이 서울·경기 소재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8만여 건에 달하는 방대한 공공데이터를 토대로 한 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건강·교육·복지·지역사회 등 4개 영역 전반에 걸쳐 탄탄한 인프라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곧 재정력과 직결됩니다.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일수록 다방면에서 고르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반대로 재정자립도가 한 자릿수에 머무는 전국의 수많은 군 단위 지자체들은 이 넓은 평가판에서 애초에 공정한 경쟁 자체가 어렵습니다. 모든 분야에 고르게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구조적 현실이, 화천군의 전략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됩니다. 재정자립도가 6%에 불과한 화천군이 아동 성장환경 지표에서 강원도 1위, 전국 군 단위 4위라는 성과를 거둔 것은 모든 분야에서 고루 잘한 결과가 아닙니다.
어차피 대도시처럼 전 영역을 완비할 수 없다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겠다는 담대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화천군이 선택한 그 한 가지는 바로 ‘교육’이었습니다.
“돈 없으면 이사도 못 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현대어로 풀면 이렇게 됩니다.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세 번이나 이사한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는 오늘날 ‘강남행 이민’이나 ‘학군 이사’라는 씁쓸한 현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 기회가 태어난 지역에 따라,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느끼는 불편한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곳이 있습니다.
강원도 최전방 접경지역, 휴전선 남방 22km에 위치한 인구 2만여 명의 소도시 화천군입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 수준인 6%에 불과한 이 작은 군(郡)이, 강남도 목동도 아닌 곳에서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지역 성공 사례를 넘어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지방소멸 위기, 저출산 문제, 교육 불평등이라는 세 가지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돌파하려는 이 작은 도전의 12년 여정을 들여다봅니다.
강남도 이긴 전방 소도시, 아동 성장환경 강원 1위의 실체
이번 지표 조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름은 사실 1위 과천이 아닙니다. 강원도 18개 시·군 가운데 77.2점으로 도내 1위, 전국 군 단위 82개 지자체 중 4위를 차지한 화천군입니다.
특히 초록우산은 발표회 현장에서 화천군을 ‘다방면의 우수 사례’로 별도 소개하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낮은 재정 자립도에도 불구하고 전국 최초로 설립해 직영 중인 온종일 돌봄시설, 파격적인 대학 학자금 전액 지원, 해외 배낭연수 및 어학연수, 연령대별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 등이 선진적이고 우수한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과천시의 재정자립도가 60%를 상회하는 반면, 화천군의 재정자립도는 6%에 불과합니다. 열 배에 이르는 재정 격차를 딛고 같은 평가판 위에서 이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수도권 집중이 낳은 지역 불평등 구조 속에서, 가장 취약한 조건의 지자체가 교육 분야에서 역주행하는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월납금을 빼앗긴 소년’이 설계한 교육 혁명
화천군의 교육 드라이브는 2014년, 9급 공무원 출신인 최문순 군수가 민선 6기에 취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교육에 대한 집착은 개인적 상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중간고사 도중 월납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험지를 빼앗겼던 그 기억이, 평생의 정책 철학이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 학교에서 쫓겨나는 아이가 없게 만들겠다”는 다짐이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라는 슬로건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12년째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취임 직후 그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행정조직 내에 ‘교육복지과’를 신설했습니다. 교육과 복지를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어 통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었습니다. 한정된 재원을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교육에 쏟아붓겠다는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화천군의 재정자립도는 2024년 기준 6%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 군 지역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예산의 대부분을 중앙정부 교부금과 국고보조금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 48.6%와 비교하면 그 열악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조건에서 매년 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교육 분야에 집중 편성한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결단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 무상교육, 화천군 인재육성재단
화천군 교육 정책의 핵심 축은 ‘화천군 인재육성재단’입니다. 부모가 화천에 3년 이상 실거주 중이라면,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자녀의 대학 등록금 실납입액 100%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관계없이 ‘출발선’을 맞춰주겠다는 선언입니다.
지원은 등록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외지에서 대학에 다니는 화천 출신 학생들에게는 월 60만원 한도에서 거주공간 실비 100%를 지원합니다. 세계 100대 대학에 진학한 학생에게는 기숙사비까지 별도로 지원하며, 유학비 지원의 길도 열려 있습니다.
고교 3학년 직업위탁교육생이나 기업 현장실습생에게는 매달 50만원 한도로 거주비를 지원해,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했습니다. 2026년부터는 초중고교 입학 축하금 제도도 새로 신설해, 초등 입학생 30만원, 중학생 40만원, 고등학생 50만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지원은 ‘화천에 살기만 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소득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대한민국 최초의 지자체 주도 대학 무상교육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 출발점을 최전방 소도시가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100대 대학 방문이 의무인 해외 배낭연수
화천 아이들의 글로벌 교육 기회도 눈에 띕니다. 화천군은 2015년부터 관련 조례에 따라 중고교생 대상 해외 배낭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습니다. 학생 1인당 500만원의 경비를 지원하되, 항공·숙박·방문 일정은 모두 학생들 손으로 직접 기획하게 합니다. 단 하나의 조건, 세계 100대 대학 중 한 곳 이상을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5년 여름방학, 65명의 화천 청소년들이 미국·캐나다·영국·독일·프랑스·스위스 등 10여 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과 맥길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등 세계 최고의 학문 현장을 직접 발로 밟았습니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를 다녀온 화천 청소년은 409명에 이릅니다.
겨울방학에는 영국 옥스퍼드 지역의 어학연수, 10월에는 뉴질랜드 초등학생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2025년 한 해에만 화천군 지원으로 해외에 나간 청소년이 129명에 달했습니다. 강남 학원가에서 영어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 누리는 글로벌 경험을, 강원도 산골 아이들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 최초 지자체 온종일 돌봄, 화천커뮤니티센터의 탄생
2024년 2월, 화천읍 화천초등학교 부지에 ‘화천커뮤니티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총 사업비 216억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5,135㎡ 규모로, 대한민국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 건립·직영하는 초등 온종일 돌봄시설입니다.
실내 놀이터, 공연장, 창의교육실, 글로벌 교육실, 진로진학 상담실, 스터디 카페까지 갖춘 이 센터에서는 각 돌봄반마다 외국인 교사와 내국인 교사가 함께 배치되어 아이들의 외국어 교육까지 책임집니다.
화천군의 스마트 셔틀버스 시스템이 안전한 귀가까지 담당해, 명실상부한 ‘완전한 온종일 돌봄’이 구현됩니다. 맞벌이 부부가 사교육비 걱정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공공이 책임지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모델은 이미 전국으로 확산 중입니다. 교육부와 지방시대위원회는 화천군의 온종일 돌봄 운영 사례를 2024년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우수 모델로 선정했습니다.
2025년 시범지역 운영평가에서는 최고 등급인 A등급을 획득해 국비 10억원을 추가 확보했습니다. 화천군은 2026년 사내면에 총 170억원을 투입한 사내교육커뮤니티센터 착공에 들어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화천학습관, 지방 아이들에게도 수도권 수준의 입시 코칭을
교육 지원의 층위는 더 세밀합니다. 화천군은 이미 2008년, 최문순 군수가 자치행정과장 시절부터 지역에 기숙형 방과후 학원인 ‘화천학습관’을 운영해 왔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유명 학원 강사들이 화천까지 내려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문가들이 양질의 입시 컨설팅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화천커뮤니티센터에는 진로진학 전문가가 상주하며 개별 컨설팅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강남 대치동 학원가의 입시 노하우를 산골 소읍으로 가져온 셈입니다.
학습관에 입교하면 부모 부담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수도권에서 고등학생을 둔 가정에서 매달 수백만원의 사교육비가 들어간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화천학습관 제도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평가 받습니다.
이러한 교육지원 생태계의 종합적인 결과로, 화천학습관은 수도권 소재 우수 대학교 입학생들을 꾸준히 배출해 내고 있습니다. ‘지방은 입시에서 불리하다’는 상식이 화천에서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재정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지방소멸 시대의 역설
화천군의 성과는 단순히 한 지자체의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방소멸과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대한 하나의 현실적 답안입니다.
초록우산의 이번 조사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부산 중구(61.03점)와 1위 과천시 사이의 점수 차는 30점 이상입니다. 취약 지역 24곳 중 대다수가 경남, 전남, 전북 등 지방에 집중됐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환경이 인구 유출을 낳고, 인구 유출이 다시 인프라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이미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화천군의 사례는, 이 악순환이 반드시 불가역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재정자립도 6%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리더십과 일관성이 있다면, 지방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화천군이 선택한 것은 넓고 얕은 복지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단일한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대도시처럼 모든 것을 갖출 수 없다면, 하나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가 바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은 진화 중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이라는 슬로건은 어쩌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인구 2만, 재정자립도 6%의 산골 군청이 내세우기에는 분수에 맞지 않는 포부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문순 군수가 이 슬로건을 12년째 밀고 온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린 시절 시험지를 빼앗겼던 그 소년이, 다음 세대의 어떤 소년도 같은 이유로 시험지를 빼앗기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때문입니다.
화천군의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신혼부부 임대주택 입주자에게 임대 보증금과 월 임대료의 90%를 지원하고, 자녀 출산 때마다 5년씩 거주기한을 연장해 최장 30년 간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보장하는 ‘교육×돌봄×주거 패키지’ 정책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납부 임대료가 피자 한 판 가격(3만 6,000원)에 불과한 이 정책은, 재정이 아닌 의지와 창의성의 산물입니다.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격차, 경제력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은 ‘구조적 문제’라는 이름 뒤에 숨어 개인과 지역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화천은 말합니다. 구조는 의지에 의해 균열이 생기고, 균열에서 희망이 자란다고 말입니다.
아이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든, 어떤 경제 환경에서 자라든, 교육의 기회만큼은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위입니다. 화천군의 12년은 그 당위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지갑이 아니라 아이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지역, 주소가 아닌 꿈으로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를 향한 작지만 단단한 발걸음입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