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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향한 실험, ‘사내면 사람들 밴드’가 남긴 것들

이 글은 ‘사내면 사람들’ 밴드가 만들어진 배경과 운영 과정, 그리고 그를 둘러싼 오해와 논란을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쓰는 기록입니다.

지역 행정의 가장 큰 숙제는 늘 ‘소통’입니다. 제도는 정교해지고 행정 절차는 체계화되었지만, 정작 주민들이 체감하는 행정은 더디고 답답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면 단위, 읍 단위의 기초 행정 현장에서는 정보 전달의 지연, 민원 처리의 경직성, 주민 대표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하나의 실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내면 사람들 밴드’로 상징되는 SNS 기반 행정 소통 시도입니다.

1. 고향으로 돌아온 면장, 그리고 부담

2015년 8월 20일, 필자는 사내면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고향면장이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지역으로의 발령은 반가움과 동시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익숙한 얼굴들, 오래된 관계, 그리고 기대와 시선이 교차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복잡한 계획보다 단순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주민과의 소통 행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했습니다. 이는 개인적 신념이 아니라, 당시 지역 행정이 안고 있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판단이었습니다.

사내면 사람들 밴드의 상징 이미지
사내면 사람들 밴드 상징적 이미지

2. 당시 면 행정의 전달 구조

기존의 면 행정은 매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행정 정보는 매달 20일에 열리는 이장회의를 통해 전달되었고, 이장이 다시 각 마을 주민들에게 내용을 전파하는 구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 전달의 지연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어떤 주민은 중요한 행정 소식을 뒤늦게 알거나, 아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민원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졌습니다. 주민은 이장에게 민원을 전달하고, 이장은 이를 면사무소에 전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항상 원활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3. 이장 중심 행정의 그늘

이장과 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경우, 민원은 출발선조차 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주민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가 ‘대표’를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불편이었습니다.

행정 절차 역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장이 민원을 접수하면 마을 담당 공무원이 현장 출장을 나가고, 보고서를 작성해 면장 결재를 받는 방식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민원 처리는 자연스럽게 지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스템은 일부 공무원들에게는 편리한 구조이기도 했습니다. 이장 동의를 이유로 민원을 미루거나 책임을 분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4. 귀농·귀촌과 갈등의 현실

사내면은 수도권과 인접한 지역적 특성상 귀농·귀촌인이 유독 많았습니다. 이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 요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존 주민들과의 갈등을 동반하기도 했습니다.

생활 방식의 차이, 기대의 차이, 그리고 소통 방식의 차이가 마찰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공식적인 행정 절차만으로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보다 즉각적이고 열린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5. SNS 행정이라는 발상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SNS를 통한 행정 소통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2016년 2월, 당시 사내초등학교 학부모 회장이던 J씨를 BBQ치킨집에서 만나 구상을 설명했습니다.

행정과 주민 간의 친밀성을 높이고, 신속한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페이스북보다 이용률이 높았던 ‘밴드’ 개설을 설명했습니다. 밴드 이름은 ‘사내면 사람들’로 정했습니다. 특정 조직이나 인물이 아닌, 지역 주민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거절하는 J씨에게 운영권을 떠 맡겼습니다. ‘민원이나 밴드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내(면장)이 진다’는 조건이었습니다. J씨를 운영자로, BBQ치킨집 여사장님과 내가 부운영자를 맡기로 했습니다.

6. ‘사내면 사람들’ 밴드의 목적

그 밴드는 단순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니었습니다. 행정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주민들 간의 소통을 촉진하며, 갈등을 완화하는 공공적 플랫폼을 지향했습니다.

민원을 밴드에 올리면 면장이 즉시 확인하고 반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는 기존 행정 시스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7. 쏟아지는 민원과 현장의 변화

밴드가 활성화되자 다양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는 글부터 폭우로 다리가 넘쳤다는 긴급 상황, 염화칼슘 지원 요청, 홀로 사는 노인의 어려움, 풀 베기 요청, 헌혈증 모금 요청까지 실로 다양했습니다.

어떤 지인은 내게 “면장이 스스로 무덤을 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낀 변화는 분명했습니다. 긴급한 민원은 즉시 현장으로 나가 조치했고, 필요하다면 그 자리에서 업체를 불러 해결했습니다. 그 결과 민원 처리 기간은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단축되었습니다.

8. 내부의 반발과 갈등

이러한 변화는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큰 반발은 이장단과 일부 면사무소 직원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이장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권한이 약화된다고 느꼈습니다. “면장이 이장질까지 다 해 먹어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있었습니다.

직원들 역시 밴드 가입 지시에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법령이나 지침에 없는 일을 왜 해야 하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저항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9. 주민들의 선택과 참여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밴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정보에서 뒤처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참여가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타읍면을 비롯한 외지인들의 접근은 차단했습니다.

2018년 6월 기준, 사내면 인구 6,800명 중 약 1,700명이 밴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노인과 어린이를 제외하면 참여율은 80%에 육박했습니다. 매일 꾸준히 올라오는 행정 정보와 미담 사례, 지역 소식이 밴드 활성화의 원동력이었습니다.

10. 소통 행정의 확산과 평가

3년여 동안 밴드에 내가 올린 글은 700여 건에 달했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타 읍·면 주민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군수에게 “사내면장을 우리 면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소통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갈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사내면 사람들 밴드’ 태생 논란과 본질의 문제

최근 이 밴드의 태생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 듯합니다. 누가 만들었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입니다. 처음의 순수한 취지가 퇴색되고, 지역 정치나 개인의 이해관계에 이용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

‘사내면 사람들 밴드’로 상징되는 SNS 행정 실험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갈등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으며, 반발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도가 지역 행정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사실입니다.

행정은 제도 이전에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빠르게 반응하며,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행정이야말로 지역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왜 만들었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순수한 문제의식이 앞으로도 지역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사내면 사람들 밴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