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 보건의료원이 가르쳐 준 실천행정의 온기
강원도 화천의 새벽은 깊고 고요합니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이 작은 고장은 해가 뜨기 전까지 사람의 기척도 드문 곳입니다.
그 고요함이 유난히 깊었던 2026년 5월 10일 일요일 이른 새벽, 전화 한 통이 평온한 일상을 흔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귀촌을 한 이웃 젊은 남성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사업차 중국 출장 중이었고, 남편 혼자 집을 지키던 중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졌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혼자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차를 태워 달라는 다급한 부탁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저는 난처한 처지였습니다. 전날 과음을 한 탓에 운전대를 잡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이웃의 다급함을 외면할 수 없어 아내에게 부탁했고, 아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섰습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온기입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그 이상의 온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일요일 새벽을 지킨 사람들
아내의 차를 타고 화천군 보건의료원에 도착했을 때,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간호사와 공중보건의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환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꼼꼼하게 들었고, 간단한 진료를 마친 뒤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상태를 보아하니 춘천의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말입니다. 화천에서 춘천까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입니다. 멀지 않은 듯 보이지만, 몸이 아픈 사람에게 그 40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더구나 곁에 가족 한 명 없이 홀로인 환자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화천군 보건의료원은 지체 없이 앰뷸런스를 준비했습니다.

40분의 동행, 화천군 보건의료원 의사와 간호사
앰블런스에는 공중보건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탑승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환자 곁을 지켰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는 40분 내내 의사는 응급처치를 이어가면서도 환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두렵지 않도록,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간호사 역시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의사 곁에서 손발을 맞추었습니다.
낯선 고장에서 홀로 몸이 아팠던 환자에게, 의사와 간호사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는 그 어떤 처치보다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원초적인 위로였습니다. 아내는 앰뷸런스 앞좌석에 동승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고 했습니다.
춘천의 큰 병원 응급실에 환자를 무사히 인계한 뒤, 의사와 간호사는 화천군 보건의료원의 업무가 있었기에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화천으로 복귀했습니다.
환자를 데려다주는 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공식적으로 끝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복귀한 뒤에도 이어진 마음, 간호사의 거듭된 전화
화천으로 돌아간 간호사는 춘천 병원 응급실에 남아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환자 상태가 어떠한지, 검사 결과는 나왔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했습니다.
간호사와 의사는 본래 업무로 복귀한 뒤에도 마음은 여전히 춘천 응급실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간호사는 전화 통화마다 따뜻하게 당부했습니다.
퇴원 이후에도 조금이라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거나 불안한 점이 있으면, 사소한 것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연락을 달라고. 환자가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자신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아내는 그 전화들을 받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업무로 복귀한 처지에서, 보호자도 아닌 이웃 지인에게 몇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일은 어떤 직무 규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배려에서만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아내는 나중에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전화들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라고.
공무원이라는 이름의 다른 의미
공중보건의사와 간호사는 공무원입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급여를 받고, 공식적인 직무 범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공무원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기도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 하고, 민원인을 처리해야 할 서류 더미처럼 대한다는 편견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5월10일 새벽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일요일 새벽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앰블런스에 올라 40분 산길을 달렸습니다. 환자를 춘천 응급실에 안전하게 인계하고 화천으로 복귀한 뒤에도, 간호사는 전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행동에는 어떤 추가 보상도, 특별한 지시도 없었습니다. 오직 사람을 향한 진심만 있었습니다. 공복(公僕)이라는 말은 공공의 종, 즉 주민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아름다운 말이 현실에서 얼마나 살아 숨 쉬는지는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화천군 보건의료원 직원들의 이야기는 더욱 빛납니다. 그들은 공복이라는 말을 입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몸소 실천했습니다.
작은 고장이 가진 가장 큰 자산
화천은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군(郡)입니다. 대도시 대형 병원처럼 첨단 장비가 즐비한 곳이 아닙니다. 의료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새벽, 화천군 보건의료원이 보여준 것은 시설이나 장비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였습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 그리고 공복으로서의 소명 의식이었습니다.
요즘 지방 소멸이 화두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인구가 줄며 지역이 활력을 잃어갑니다. 이 흐름을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귀농·귀촌 지원, 청년 정착 사업, 주거 보조금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지역을 선택하고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이유는 정책 패키지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그 땅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서울에서 화천으로 이사 온 그 젊은 부부는 그날 새벽의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프고 두려웠던 새벽에 자신을 돌봐 준 의사와 간호사를, 그리고 복귀한 뒤에도 여러 차례 안부를 물어온 간호사의 목소리를 말입니다.
그 기억은 화천이라는 고장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것입니다. 어떤 귀촌 보조금보다, 그 따뜻한 전화들이 더 강력한 정착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을 붙잡는 힘입니다.
결론
다행히 환자는 춘천의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별다른 큰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었습니다. 그 새벽, 낯선 이웃을 병원에 데려간 아내의 선의, 함께 앰뷸런스에 탑승해 40분 산길을 달린 의사와 간호사의 헌신, 그리고 화천으로 복귀한 뒤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건 간호사의 마음.
그 모든 것이 모여 한 사람의 두렵고 외로운 새벽을 버티게 했습니다. 실천행정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규정에 없어도 마음이 움직이면 전화를 한 번 더 거는 것, 업무를 마치고 복귀한 뒤에도 환자 안부가 궁금해 수화기를 드는 것, 퇴원 후에도 걱정이 되어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작고 소박한 행동들이 쌓여 비로소 실천행정이 됩니다. 화천군 보건의료원의 공중보건의사와 간호사는 바로 그것을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행정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마음을 담지 않으면 공허합니다.
반대로 제도가 부족해도 사람이 마음을 다하면 그 부족함을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화천군 보건의료원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화천군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이렇다면, 화천이라는 고장의 미래는 밝습니다. 첨단 산업도, 화려한 인프라도 없지만, 이 땅에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문화가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정책보다 값진 자산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온기가 온기를 낳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화천군 보건의료원의 공중보건의사와 간호사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이 그날 새벽부터 이후까지 실천한 공복의 도리는, 우리 사회가 어느새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과 진심 어린 전화 한 통, 바로 그것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이 지금 화천에 살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