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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 ‘기본소득’으로 여는 농촌의 새 지평

강원도 최북단, 접경 지역 화천군. 인구 2만 명을 간신히 상회하고 있는 이 작은 군이 또 한 번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6년 6월 11일 발표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 추가 선정 결과에서, 강원도 내 유일한 지자체로 화천군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충북 보은, 전북 진안·무주, 전남 구례·보성, 경북 청송 등 전국 7개 군과 함께 선정된 이번 결과는, 단순한 행운이나 지리적 조건의 산물이 아닙니다. 수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와, 지역을 살리겠다는 일관된 의지가 만들어낸 값진 성과입니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인구 소멸 시대의 생존 전략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는 정책입니다. 매월 일정 금액을 지역 주민에게 지급해 소득 안정을 도모하고, 나아가 지역 경제와 공동체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 목표입니다.

1차로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북 옥천, 충남 청양, 전북 순창·장수, 전남 곡성·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등 10개 군이 선정되었고, 이번에 화천군을 포함한 7개 군이 추가로 선정되며 사업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번 선정으로 화천군에 30일 이상 주민등록이 되어 있고, 실제 거주하는 군민이라면 누구나 오는 8월부터 내년(2027년) 말까지 매월 1인당 15만원의 ‘화천사랑상품권’을 지급받게 됩니다.

4인 가구라면 월 60만원, 연간 720만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금액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셈입니다. 소비는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고, 그 효과는 다시 이웃 상인과 주민에게 돌아갑니다. 소득 지원을 넘어 지역 경제의 내수 기반을 다지는 일석이조의 정책입니다.

화천군, '기본소득' 관련 이미지(출처-화천군)
화천군, ‘기본소득’ 관련 이미지(출처-화천군)

함구령 속 물밑 준비, 리더십의 진면목

이번 선정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준비 과정입니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공모 준비 과정 전반에 걸쳐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이른바 ‘함구령’을 내린 채 관련 부서에 물밑에서부터 기본소득 시범지역 선정을 준비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요란한 구호나 언론 홍보보다는, 결과로 말하겠다는 행정가로서의 결기가 담겨 있습니다. 조용한 준비는 치밀한 전략으로 이어졌습니다. 화천군은 이번 공모에서 기본소득을 단순한 재정 지원이나 복지 수당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역자산의 이익을 군민에게 환원하는 지속가능한 모델’, 즉 ‘지역재원 창출형’ 기본소득이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설계해 제출했습니다. 국가 재정에 기댄 일시적 보조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경제 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그 과실을 주민과 나누겠다는 청사진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산을 더 많이 받기 위한 공모 전략이 아니라, 화천군이 오랜 시간 고민해온 지역발전 철학의 응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선 6기부터 이어온 복지 인프라, 성과의 토대

화천군의 이번 성과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민선 6기부터 지금 민선 9기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노력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화천군은 그동안 인구 유지와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다양한 복지·생활 인프라를 차근차근 구축해왔습니다.

공공산후조리원 설치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민간 산후조리원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소규모 지자체에서 공공이 직접 나서 출산 가정의 부담을 덜었습니다. 초등 돌봄 서비스 확충은 맞벌이 가정의 최대 고민 중 하나를 해결하며 정주 의향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대학 등록금과 거주비 지원 정책은 지역 청년들이 학업을 위해 타지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악순환을 끊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신혼부부 주택 공급 사업은 청년 세대가 화천에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물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정책은 단편적인 선심성 사업이 아닙니다. 출산부터 양육, 교육, 취업, 정착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인구 정책의 일환입니다. 그리고 이번 농어촌 기본소득은 그 위에 얹히는 마지막 퍼즐 조각입니다.

기본소득이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마중물이 되고, 그 효과가 기존 복지 인프라와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구조를 화천군은 꿈꾸고 있습니다.

지역화폐의 힘, 화천사랑상품권이 만드는 경제 생태계

기본소득이 ‘화천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된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의 지급은 소비를 지역 내에 묶어두는 효과가 있습니다. 군민이 받은 상품권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나 외지 대형마트가 아닌, 화천의 슈퍼마켓, 식당, 미용실,
농산물 직판장, 병원 등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로 이어집니다.

지역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역 승수 효과’의 극대화를 의도한 것입니다. 1인당 15만원이 단순히 15만원의 소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 내에서 다시 돌고 돌며 경제적 파급 효과를 몇 배로 키울 수 있습니다.

장기화한 내수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화천 지역 상권에 생기를 불어넣는 확실한 처방이 될 것입니다. 또한 기본소득은 인구 유입의 유인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매월 15만원의 지역화폐 지급은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도시민들에게 화천 전입을 선택하는 데 유의미한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거주 확인을 전제로 하는 만큼, 이른바 ‘유령 전입’을 방지하고 실질적인 인구 증가로 이어지도록 하는 세부 기준 마련이 중요합니다. 화천군이 이달 중 지급 대상, 기준일, 신청 방법, 전입·전출자 처리, 환수 기준 등 세부 추진계획을 면밀히 수립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런 점에서 올바른 방향입니다.

조례로 완성되는 제도적 기반

기본소득의 지속성과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는 조례 제정이 필수입니다. 화천군은 이르면 오는 7월 화천군의회에 조례안을 상정하고 의결을 거쳐 시행할 계획입니다. 조례로 기본소득의 법적 근거와 지급 기준, 재원 조달 방식 등을 명문화함으로써, 단체장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민선 8기 마무리를 앞두고 이 같은 굵직한 성과를 이끌어낸 것은, 지역 행정의 신뢰성과 정책 추진력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음 세대의 리더들이 이어받을 제도적 자산을 현 임기 안에 마련하겠다는 책임 행정의 자세가 느껴집니다.

화천이 보여주는 지방소멸 대응의 새 모델

인구 소멸은 화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을 비롯해 수백 개의 지자체가 같은 위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의 대응 방식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지자체는 대규모 이벤트와 축제로 반짝 주목을 끌다 사라지고, 어떤 곳은 단기 보조금으로 통계 수치만 관리하다 본질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화천군이 보여주는 방식은 다릅니다. 출산·양육·교육·주거의 생애주기 인프라를 다지고, 그 위에 기본소득이라는 경제적 안전망을 깔고, 지역화폐로 내수 순환의 고리를 잇고, 조례로 제도를 완성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맞물립니다. ‘지역재원 창출형’이라는 개념이 단지 공모용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화천 경제가 자생력을 키워가는 방향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실행이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이번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 선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8월 지급 개시 이후의 효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인구 변화 데이터를 축적하며, 내년 말 이후에도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자체 재원 모델을 완성해가는 것이 화천군 앞에 놓인 과제입니다.

결론,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

“민선 8기 마무리를 앞두고, 오랜 기간 차근차근 공모사업을 준비해왔다.” 최문순 화천군수의 이 한 마디는 이번 성과의 본질을 압축합니다. 화려한 발표 없이 묵묵히 준비하고, 이념이 아닌 실용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단기 성과보다 지속 가능성에 방점을 찍는 행정. 그것이 인구 2만의 작은 군이 전국 59개 인구감소지역 경쟁에서 강원도 유일의 선정지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앱니다.

인구 소멸의 시대, 지방 소도시의 생존은 기적이 아니라 전략의 결과입니다. 화천군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단지 일시적인 현금 지원으로 기억되지 않고, 농촌 공동체가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선례로 자리잡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