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속, 화천에서 잃어버린 언니를 찾습니다
2025년 11월 7일,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특별하고도 가슴 저미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80대 박용식 할머님은 70여 년의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어린 시절의 흔적, 6.25 전쟁 당시 본인이 살았던 ‘방공호’를 찾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방공호란 군인들이 전투를 위해 파 놓은 흙구덩이를 말합니다. 파로호 전투 당시 마을이 모두 잿더미로 변하자, 군인들이 파 놓은 방공호가 할머니 가족의 유일한 은신처였습니다.
할머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한 아픔이자 잊을 수 없는 간절한 그리움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방공호를 찾아서 무엇을 할까?’ 하는 의문에, “당시 군사용으로 사용했을 텐데, 전쟁이 끝난 후 방치되었다면 자연히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찾으려 하시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님의 이어지는 답변 속에는 긴 세월 켜켜이 쌓인 비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전쟁의 충격으로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4세에서 6세 사이였을 거라는 말씀.
방공호를 찾는 이유는 혹시 그곳을 다시 마주하면 잊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잊혀진 이름, 사라진 기억… 전쟁이 앗아간 가족의 비극
할머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찾고자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언니’였습니다. 끔찍했던 파로호 전투와 화천 전투가 극심하던 시절, 박용식 할머님의 부모님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휴전과 동시에 할머님은 언니와 헤어져 홀로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언니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갈 정도의 나이였으니, 이미 제법 큰 아이였습니다.
할머님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 언니는 “부잣집에서 일꾼으로 부리기 위해 서로 데려가려 했었다”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린 동생에게조차 강렬한 잔상으로 남은 언니의 모습은 그 후 70여 년 동안 박용식 할머님의 마음속에 깊은 응어리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언니와 지금까지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언니의 가족이라도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 80세 노모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아드님은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전쟁이 남긴 상흔이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를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이름마저 바뀐 채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언니… 기억을 더듬는 작은 희망
할머님의 기억에 따르면 언니의 이름은 ‘박화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박원배’, 어머니의 이름은 ‘황춘자’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의 기억이라 언니의 이름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혹 언니가 남의 집 일꾼으로 가게 되었다면 주인이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희미하지만, 할머님은 언니를 찾으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일은 수없이 많았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간절히 기억을 더듬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전쟁의 아픔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화천, 어린 날의 기억을 이어줄 귀한 인연을 찾습니다
혹시 6.25 전쟁 전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또는 화천읍 동촌리, 대이리에 거주했던 분들이나 그분들의 자손 중에,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부디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 찾는 분: 할머님 박용식(80대)
- 찾는 대상: 할머님의 언니 ‘박화자’ (당시 국민학교 입학 연령 추정, 이름 변경 가능성 있음)
- 부모님 이름: 아버지 박원배, 어머니 황춘자
작은 기억의 조각 하나하나가 흩어진 가족을 다시 이어줄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늦게나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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