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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의 실험, 농어촌 기본소득이 ‘마중물’이 된다

강원도 화천군이 조용하지만 단단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지난 27일, 화천군청 회의실에서 최문순 군수와 지역 농협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 상생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화천군이 정부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공모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공식 선언이었습니다. 소박한 서명식이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협약 한 장에는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에 맞서는 작은 지역의 절박함과,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정책 실험에 대한 뜨거운 기대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 소멸의 최전선에서 시작되다

화천군은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인구가 적은 지역입니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이 땅은 이제 또 다른 의미의 지역 소멸 위기와 싸우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남은 이들은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 상권은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농업만으로는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실상은 비단 화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국 대다수의 군 단위 지자체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4월 20일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추가 공모 계획을 발표한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정부는 이미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인구감소지역 10개 군을 제외하고, 나머지 59개 지자체 가운데 5곳 안팎을 추가로 선정할 계획입니다.

선정된 지역의 주민등록상 거주자에게는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약 2년간 매월 15만 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이 지급됩니다.

59곳이 단 5곳을 두고 경쟁하는 치열한 공모판입니다. 화천군이 발 빠르게 지역 농협과 손을 맞잡은 것도 이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상생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이미지 출처 - 화천군)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상생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이미지 출처 – 화천군)

2. 지역 농협과의 협약, 단순 지급을 넘어선 선순환 설계

이번 화천군의 접근 방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농어촌 기본소득을 단순한 현금 지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역 농협과의 협약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급되는 지역사랑상품권의 주요 사용처에 농협 하나로마트 등 지역 내 상점을 포함시켜, 소비가 지역 밖으로 유출되지 않고 내부에서 순환하도록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역 농협기본소득으로 발생하는 매출의 일부를 지역상생 기부금으로 조성하여, 취약계층 지원·복지사업·장학사업·고령자 편의지원·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 등에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기본소득 정책의 고질적인 비판, 즉 “지급된 돈이 정작 지역 경제에 남지 않고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나 역외 소비로 빠져나간다”는 우려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이기도 합니다.

상품권이라는 형태 자체가 이미 사용처를 제한하는 기능을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역 농협이라는 지역 밀착 기관을 고리로 삼아 소비와 기부, 복지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내려 한 것입니다. 지역 경제의 혈액순환을 돕는 정밀한 처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조례 제정, 농어촌 기본소득의 제도적 마중물을 놓다

화천군이 공모 신청과 함께 ‘화천군 농어촌 기본소득 지원 조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조례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닙니다. 시범사업이 끝난 뒤에도 지역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뿌리를 미리 심어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군은 이르면 5월 중 입법예고를 거쳐 7월 화천군의회에 조례안을 상정하고, 의회 의결 후 공포·시행하는 일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범사업은 어디까지나 2년이라는 한시적 기간을 전제로 합니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이후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기본소득 논의에서 늘 따라붙는 숙제입니다.

화천군이 지금부터 조례라는 법적 그물을 짜두는 것은 이 숙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입니다. 중앙 정부의 시범사업이 끝나더라도 지역이 자체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마중물을 부어 스스로 물을 길어 올리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농어촌 기본소득, 지역 소멸 시대의 새로운 복지 언어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경험이 기폭제가 되었고, 이후 기본소득은 정치적 의제로도 빠르게 부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엇갈립니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주면 노동 의욕이 꺾인다”는 비판론과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야 진정한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는 지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이 논쟁의 맥락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합니다. 단순히 ‘돈을 나누어 주는’ 차원을 넘어,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는 지역 재생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천처럼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는 지역에서는 기본소득이 정착 유인책이 될 수도 있고, 고령 농업인들의 안정적인 생활 기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지역 소비를 늘려 상권을 유지하고, 그 수익이 다시 지역 복지로 환류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면,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닌 지역 재생 투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마중물이 되려면, 선순환의 흐름이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월 15만 원이라는 금액이 실질적인 생활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화천군이 이번에 보여준 접근 방식은 그러한 우려들을 상당 부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입니다. 소비처를 지역 내로 묶고, 그 매출의 일부를 다시 지역 공동체로 환원하는 구조는 단순 지급보다 훨씬 정교한 설계입니다.

지역 농협이라는 신뢰도 높은 지역 기관을 매개로 삼은 것도 현명한 선택입니다. 조례 제정을 통해 지속성을 담보하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론

최문순 군수의 말처럼, 농어촌 기본소득이 진정한 ‘마중물’이 되려면, 그 물이 고이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주민의 손에서 지역 농협의 상점으로, 상점에서 기부금으로, 기부금에서 다시 이웃의 삶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흐름이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화천군이 꿈꾸는 것은 바로 그 흐름입니다.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화천군의 이번 도전은 작지만 용기 있는 실험입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라는 씨앗이 화천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농협과의 협력이라는 햇살과 조례 제정이라는 물줄기를 받아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