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랠리, 평화의 땅을 달리다
이 칼럼은 자전거 두 바퀴가 그어내는 분단의 지도 DMZ 랠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강원도 화천. 이름만 들어도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였고, 반세기가 넘도록 철책과 검문소가 일상의 풍경이었던 땅. 그 땅에서 매년 5월이면 수백, 수천 명의 자전거 바퀴가 일제히 굴러갑니다. DMZ 랠리’라는 이름의 대회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날이 다가옵니다. 2026년 5월 17일, 화천생활체육공원을 출발해 평화의 댐 인근을 거쳐 화천 청소년수련관까지 총 71.35킬로미터를 달리는 이 행사는 단순한 자전거 경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단의 지형 위에서 벌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용한 화해 의식입니다.
검문소가 사라진 자리
올해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변화는 단연 검문 폐지입니다. 국방부가 평화의 댐 주변 민간인 통제선을 북쪽으로 조정함에 따라, 참가자들은 이제 번거로운 신원 확인 절차 없이 민통선 구간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작은 행정 조치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땅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 이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민간인 통제선, 이른바 민통선은 1954년 군사정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설정된 이후 수십 년간 민간인의 자유로운 접근을 막아온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습니다.
그 선 안쪽은 오랫동안 국가 안보라는 명목 아래 봉인된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군사적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장벽이 조금씩, 조금씩 북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은 상징적으로 중요합니다. 통제와 제한의 공간이 서서히 개방과 교류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검문소 없이 그 길을 달린다는 것. 그것은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 체제가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는 체험적 증거입니다. 라이더들은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며, 몸으로 그 변화를 실감하게 됩니다.

상처의 땅이 축제의 무대로
화천은 상처 깊은 땅입니다. 6.25전쟁 당시 파로호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격전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화천’이라는 지명 자체가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묵직한 울림을 가집니다. 전쟁이 남긴 지뢰밭, 철조망, 버려진 군사시설들이 한때는 이 지역 풍경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화천은 다릅니다. 겨울이면 산천어 축제에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봄이면 DMZ 랠리로 전국의 자전거 마니아들이 집결합니다. 전쟁의 상처 위에 축제의 꽃이 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단지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땅을 살아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의미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그 위에 덧씌워 왔기 때문입니다. DMZ 랠리는 그 재해석의 가장 역동적인 형태 중 하나입니다.
분단의 상징인 DMZ를 배경으로, 평화를 향한 페달을 밟습니다. 군사적 긴장의 공간을 스포츠와 문화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이 역설적 시도는, 어쩌면 우리가 분단을 다루는 가장 건강한 방식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금기와 공포의 대상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함께 호흡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평화 감수성을 키우는 길입니다.
DMZ 랠리, 71킬로미터의 철학
DMZ 랠리 코스는 71.35킬로미터입니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리보다 길고, 웬만한 마라톤 풀코스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거리를 완주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급경사 내리막도 있고, 험준한 산악 구간도 포함됩니다. 주최 측이 일부 위험 구간에서 기록 측정을 아예 포기하고 비계측 퍼레이드로 운영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 대회의 매력은 역설적으로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기록이 중요하지 않은 구간이 있다는 것. 순위보다 완주가, 경쟁보다 동행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 바이크 패트롤이 그룹과 함께 달리고, 안전요원이 곳곳에 배치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대회는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함께’를 지향합니다.
그것은 평화라는 가치와 닮아 있습니다. 평화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향해 함께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71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라이더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철학을 몸으로 배우게 됩니다.

지역과 함께 달리는 두 바퀴
DMZ 랠리는 스포츠 행사이기 이전에 지역 공동체의 축제입니다. 참가자 전원에게 지급되는 1만 원 상당의 화천사랑상품권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외지에서 온 라이더들이 화천 땅에 발을 딛고, 화천 사람들이 만든 것을 소비하고, 화천 경제에 작은 보탬이 되라는 초대장입니다.
사이클과 MTB 부문 입상자들에게 시상품으로 화천 쌀을 수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화천에서 자란 것으로 화천을 찾아온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 그것이 이 대회가 지향하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수도권에서 몇 시간을 달려 화천까지 오는 라이더들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이 땅을 기억합니다. 다음 해 다시 찾아오는 이들도 있고, 가족과 함께 관광으로 방문하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스포츠 이벤트 하나가 지역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역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화천군이 이 대회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단지 자전거 경주를 위해서가 아님은, 이런 맥락에서 분명해집니다.
변방의 소도시 화천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몇 안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이 DMZ 랠리입니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많은 지방 소도시들에게, 화천의 사례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역사적 맥락을 콘텐츠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 DMZ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스포츠와 문화로 풀어낸 화천의 접근법은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시도입니다.
달리는 것, 그 자체의 의미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압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고, 힘든 구간을 버티고 나면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것을. 페달을 밟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몸이 지쳐갈 때 마음이 달래고, 마음이 흔들릴 때 몸이 버텨줍니다. 그 균형 속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화천 DMZ 랠리의 71킬로미터도 그런 여정입니다. 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땅을 달리며, 라이더들은 한반도의 현재와 마주합니다. 철책이 보이고, 평화의 댐이 보이고, 그 너머 북녘 땅의 산자락이 보입니다.
그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대회가 직접 제시해 주지는 않습니다. 함께 달리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답입니다.
국적도, 세대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는 것. 경쟁보다 완주를,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에 두는 이 대회의 정신 안에는, 우리가 꿈꾸는 평화의 원형이 담겨 있습니다.
5월 17일, 화천의 아침이 밝으면 다시 수천 개의 바퀴가 굴러갈 것입니다. 그 바퀴들이 그어내는 길 위에서, 분단의 지도는 조금씩 다시 쓰일 것입니다. 두 발로 밟는 페달이,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평화의 언어를 대신 말해줄 것입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