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와 향나무, 절대 함께 둬서는 안 되는 치명적 동거, 붉은별무늬병이 농가에 보내는 경고
배나무붉은별무늬병, 즉 녹병(鏽病)은 향나무와 배나무를 오가며 생애 주기를 완성하는 특이한 진균이 일으키는 병으로, 배나무 농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수목병입니다.
이 글은 전원생활을 시작하며 직접 이 병을 경험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붉은별무늬병의 발생 원리와 예방법, 그리고 농가와 정원 애호가 모두가 실천할 수 있는 관리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배나무를 키우고 있거나 앞으로 키울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지금 바로 주변의 향나무 위치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전원생활의 시작, 배나무를 심다
아파트를 정리하고 전원주택을 지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의 콘크리트 벽을 벗어나 흙을 밟고 산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지만, 내 손으로 심은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장면을 상상하면 마음이 더욱 부풀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고른 나무가 배나무와 사과나무였습니다. 배나무, 즉 이화(梨花)는 열매만이 아니라 꽃도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봄에 순백의 꽃을 피우는 배나무는 특히 달밤이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야광나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달빛 아래서 은은하게 빛나는 배꽃의 풍경은 전원생활의 낭만을 한층 깊게 해주었습니다. 정원수로서도 더없이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정원수로 심을 배나무를 구입하는 대신, 형님 소유의 야산에서 작은 돌배나무를 캐어 정원으로 옮겨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화천의 황금배나무 농가에서 가지 몇 개를 얻어다 접목을 시도하였습니다.
배나무과(科) 나무들은 같은 종끼리 접목이 잘 되는 편이라 작업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제 봄에는 꽃을 감상하고, 가을이면 탐스러운 황금배를 수확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서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2. 배나무 잎에 돋아난 징그러운 돌기, 붉은별무늬병과의 첫 만남
배나무 잎마다 온통 징그러운 모양의 것들이 돋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핏 보면 작은 송충이가 잎 뒤에 빼곡히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벌레가 아니었습니다.
잎 앞면에는 붉은 반점이 생겨 있었고, 뒷면에는 뾰족하고 기묘한 돌기가 촘촘히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병이 생긴 것은 분명한데,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우연히 이웃을 만나 배나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이웃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먼저 물어왔습니다.
“우리 집 배나무도 똑같아요. 원인을 아세요?”
저야 당연히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웃이 말을 이었습니다.
“과장님 댁에 노간주나무 심으셨죠? 그 나무가 원인이에요.”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집 앞에 노간주나무를 심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수형이 단정하고 사철 푸른 노간주나무는 정원수로 더없이 잘 어울렸기에 꽤 아끼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배나무의 적이라니, 처음에는 선뜻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웃의 설명은 이러하였습니다. 배나무 인근에 향나무가 있으면 배나무를 제대로 키우기 어렵습니다. 향나무의 포자가 바람을 타고 배나무 잎에 옮겨 붙으면서 병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노간주나무 역시 향나무과(科)에 속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배나무에는 치명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끼던 노간주나무를 즉시 베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배나무에는 더 이상 그 기묘한 돌기가 돋아나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비로소 정상적으로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3. 붉은별무늬병이란 무엇인가, 두 나무를 오가는 녹병균의 생애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배나무붉은별무늬병(梨赤星病)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병은 단순한 세균성 질환이나 해충 피해가 아니라, 배나무와 향나무 두 종류의 나무를 오가며 생애 주기를 완성하는 특이한 진균(眞菌), 즉 녹병균(Gymnosporangium asiaticum)이 일으키는 병이었습니다.
녹병균은 가을이 되면 배나무를 떠나 향나무로 돌아가 기생하며 겨울을 납니다. 향나무의 가지와 잎에 숨어있던 병원균은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포자를 만들어 바람에 실려 다시 배나무로 이동합니다.
향나무에서 배나무로 병원균이 이동하는 시기는 대체로 4월 상순부터 5월 하순까지입니다. 배나무로 날아온 포자는 비가 내린 뒤 빠르게 발아하여,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배나무 잎과 과실 조직을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배나무 잎 앞면에 나타나는 주황색 또는 붉은 반점이 바로 이 침투의 흔적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점은 점점 커지고, 잎 뒷면에는 녹포자퇴(鏽胞子堆)라고 부르는 뾰족하고 기묘한 돌기들이 촘촘히 솟아오릅니다.
마치 잎 뒤에 작은 뿔이 가득 돋아난 것처럼 보이는 이 모습이 바로 제가 처음 보았을 때 그토록 당혹스러워했던 바로 그 광경입니다. 이 돌기를 붉은별무늬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잎 앞면의 반점이 붉은 별 모양처럼 퍼져나가는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배나무에서 증식을 마친 녹병균은 다시 바람을 타고 향나무로 돌아가 기생하며 겨울을 납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또다시 배나무로 날아오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두 나무가 가까이 있는 한 이 악순환은 결코 끊이지 않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병원균이 날아가는 거리입니다. 보통 배 과수원 반경 1킬로미터 이내의 향나무에서 날아오지만, 기류에 따라서는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감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처럼 집 앞에 심은 정원수 하나가 바로 옆 배나무를 병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의 향나무가 멀리 떨어진 배 과수원에 피해를 주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피해는 잎과 과실에 집중되며, 피해를 입은 과실은 기형이 되거나 상품성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신고배를 포함한 모든 배나무 품종이 동일하게 감염된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특정 품종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4. 조선 실학자도 알았던 배나무와 향나무의 관계
흥미로운 것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이 사실을 예리하게 눈치챈 학자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는 자신의 저술에서 향나무가 있는 주변의 배나무에 이상한 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현대 식물병리학의 개념 없이도, 오랜 관찰과 기록의 힘만으로 두 나무 사이의 상관관계를 꿰뚫어 본 것입니다. 수백 년 전 선인들의 눈썰미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이미 배나무와 향나무를 가까이 두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 오늘날 농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로 남아 있습니다.
5. 향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주의해야 할 수종과 안전한 수종
배나무붉은별무늬병의 일차 전염원으로 병원균 발생이 많은 향나무는 가이즈카향나무, 눈향나무, 뚝향나무, 향나무,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한 노간주나무 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향나무과에 속하는 수종으로, 배나무 인근에 심어져 있을 경우 매년 봄마다 병원균을 배나무로 날려 보내는 전염원이 됩니다.
반면 측백나무와 둥근향나무(옥향)는 병원균이 거의 부착하지 않으므로, 배나무 인근에 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정원을 꾸밀 때 상록수를 함께 심고 싶으시다면 이 두 수종은 비교적 안전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가이즈카향나무는 조경수로 매우 널리 사용되는 수종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아파트 단지, 공원, 도로변, 학교 등 우리 주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바로 가이즈카향나무입니다.
배 과수원 근처에 조성된 공원이나 관공서 조경에 이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경우, 과수원 주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병원균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배나무붉은별무늬병 방제를 단순히 개별 농가의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 전체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으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6. 붉은별무늬병 예방과 방제, 이렇게 하십시오
배나무붉은별무늬병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배나무 인근에 향나무류를 심지 않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예방책입니다. 이미 심어져 있는 경우라면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전문가들은 배나무와 향나무류 사이에 최소 30미터 이상의 거리를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배나무 농사를 시작하기 전, 혹은 정원에 배나무를 심기 전에 주변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향나무류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향나무를 3월 이전에 조기 전정(剪定)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농촌진흥청의 연구에 따르면, 붉은별무늬병의 주요 전염원이 되는 향나무를 3월 이전에 가지치기하면 전염원이 되는 병원균 발생 수를 무려 96.2%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포자가 형성되기 전에 미리 가지를 쳐냄으로써 병원균이 배나무로 날아갈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원리입니다. 인근에 향나무를 제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조기 전정만으로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배 과수원 인근 지역의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협력하여 조기 전정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약제 방제를 병행해야 합니다. 해마다 붉은별무늬병 피해가 반복되는 배 과수원이라면 가지치기를 마친 뒤 4월 상순부터 비가 내린 후 적용 약제를 향나무에 한두 차례 살포하면 방제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배나무 자체에도 발병 초기에 등록된 살균제를 적기에 처리하는 것이 열매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약제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배나무에 등록된 약제를 사용하고, 안전사용기준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넷째, 감염된 잎과 가지는 즉시 제거하여야 합니다. 붉은별무늬병 증상이 나타난 잎과 가지를 그대로 방치하면 병원균이 다시 향나무로 이동해 이듬해 전염원이 됩니다.
감염된 부위는 발견 즉시 제거하여 멀리 소각하거나 완전히 매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염된 식물 잔재물을 과수원 내에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 병을 키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섯째, 피해 증상을 조기에 파악하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잎 앞면에 주황색 또는 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뒷면에 뾰족한 돌기가 생기기 시작하면 붉은별무늬병의 징후로 보아야 합니다.
초기에 발견할수록 약제 방제의 효과가 높아지고 피해 범위를 줄일 수 있습니다. 4월부터 5월 사이에는 배나무 잎 상태를 꼼꼼히 살피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7. 공원과 도심의 향나무, 지역사회 협력이 필요한 이유
강원도 원주의 한 공원에서는 교육문화관 맞은편에 자라는 돌배나무에 붉은별무늬병이 한창 발병하여 잎마다 뒷면에 뾰족한 돌기가 가득 돋아 있는 것이 관찰된 바 있습니다.
공원 관리 부서에서 방제를 하지 않는다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많이 찾는 공원에서 봄마다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 더 해로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변에 향나무를 새로 심지 않는 것이지만, 이미 심어져 있는 향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신중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배나무붉은별무늬병은 단순히 개별 농가의 노력만으로 완전히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배 과수원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공원, 관공서, 도로변, 주택의 향나무가 모두 잠재적인 전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농업기술센터,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인근 주민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조기 전정과 방제에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히려 어린이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라면 붉은별무늬병에 걸린 배나무의 모습을 자연 생태 교육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두 나무를 오가며 생애 주기를 완성하는 녹병균의 신기한 생태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면, 단순히 흉측한 수목병으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연의 경이로운 한 단면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배나무붉은별무늬병은 향나무와 배나무라는 두 나무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아름다운 수형으로 정원을 꾸미는 노간주나무 한 그루, 조경용으로 흔히 심는 가이즈카향나무 한 줄이 인근 배나무 농가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연을 대할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며 아끼던 노간주나무를 베어내야 했던 그날의 결단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배나무를 살렸습니다.
노간주나무를 베어낸 그해 가을, 접목한 황금배 가지에서 처음으로 작은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 크기도 작고 수도 많지 않았지만, 그 탐스러운 빛깔을 바라보며 그간의 시행착오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은 공부의 연속입니다. 그 공부가 때로는 아끼는 나무를 베어내야 하는 선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만, 그 선택이 결국 더 건강한 정원과 더 풍성한 수확을 만들어 줍니다. 수백 년 전 서유구가 향나무와 배나무의 관계를 기록으로 남겼듯이, 오늘날 우리도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배나무를 키우고 있거나 키울 계획이 있으신 농가와 정원 애호가라면, 지금 당장 주변에 향나무류가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붉은별무늬병으로부터 배나무를 지키는 첫걸음은 바로 그 작은 확인에서 시작됩니다. 봄마다 흰 꽃을 피우고 가을마다 황금빛 열매를 내어주는 건강한 배나무, 그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결실을 오래도록 누리시기를 바랍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