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가장 먼저 전하는 나무, 강원도 동백꽃
강원도 동백꽃이라고 말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생강나무꽃으로 불리는 이 꽃을 화천에서는 남쪽지역의 붉은 동백꽃과 비교를 위하 강원도 동백꽃이라 부릅니다.
2020년, 아파트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원주택을 짓기로 결심했을 때, 설계도보다 먼저 떠올린 것이 있었습니다. 마당 한켠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
건축가와 배치도를 논의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마음속에 어느 한 나무의 자리를 정해두고 있었습니다. 생강나무, 이 지역 사람들이 동백나무라 부르는 나무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조경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읍내의 콘크리트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는 선언이었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계절의 리듬을 되찾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동백꽃을 둘러싼 오해
동백꽃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쪽 바닷가 마을의 짙은 초록 잎 사이로 뚝 떨어지는 붉은 꽃을 떠올립니다. 제주도의 동백길, 거제도의 동백숲, 여수의 동백꽃 축제.
미디어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그렇게 우리 머릿속에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동백꽃은 붉고, 따뜻한 남쪽에 핀다고.
그러나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동백꽃은 전혀 다른 꽃입니다. 이곳에서 동백나무는 생강나무(Lindera obtusiloba)를 가리키며, 그 꽃은 이른 봄 산기슭을 노랗게 물들이는 작고 소담한 꽃입니다.
붉은 남쪽의 동백과는 식물학적으로도, 생태학적으로도,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그런데도 이 두 나무는 수백 년간 같은 이름을 공유해 왔습니다.
지역마다 자연을 부르는 이름이 달랐던 시절의 흔적입니다. 이 오해는 뜻밖의 곳에서도 확인됩니다. 바로 한국 근대문학의 빼어난 단편 중 하나인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소설 속 동백꽃을 남쪽의 붉은 꽃으로 상상합니다. 소년과 소녀가 함께 쓰러지는 그 꽃밭의 향기를 남도의 진한 동백향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유정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입니다. 그의 소설 무대는 실레마을, 지금의 춘천 신동면 일대입니다. 그 땅에는 붉은 동백꽃이 피지 않습니다. 소설 속 동백꽃은 노란 생강나무 꽃, 바로 강원도의 동백꽃인 것입니다.
산비탈에 소담하게 피어난 노란 꽃더미 위로 소년과 소녀가 함께 쓰러지는 그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강원도의 동백꽃을 알아야 합니다. 문학은 언제나 그것이 피어난 땅의 언어로 읽어야 합니다.

봄을 가장 먼저 여는 나무
내가 전원주택 정원에 동백나무, 즉 생강나무를 가장 먼저 심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나무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3월말, 아직 화악산에 잔설이 남아있고 아침이면 땅이 얼기도 하는 그 계절에, 생강나무는 잎이 나기도 전에 먼저 꽃을 피웁니다.
앙상한 가지 위에 작고 노란 꽃망울들이 송송 맺히는 광경은, 긴 겨울을 버텨온 사람에게 말 그대로 계절의 선물입니다.
화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습니다. 봄이 왔다는 그 소식 하나만으로도 이 나무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향기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꽃 한 송이의 크기는 미미하지만, 군락을 이룬 꽃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집니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어딘가 생강을 닮은 독특한 향은, 한 번 맡으면 쉬 잊히지 않습니다. 봄 산행에서 이 향기를 맡는 순간, 걸음은 저절로 멈추게 됩니다.
꽃병 속 강원도 동백꽃
매년 2월 중순이면 나는 꽃눈이 맺힌 동백나무 가지를 몇 개 잘라 꽃병에 꽂아 거실에 둡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따뜻한 실내에서 꽃이 활짝 열리고, 그 향기가 집 안 가득 퍼집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직 창밖은 겨울인데 실내는 이미 봄이 된 것 같은 그 기묘한 감각을 나는 매년 기다립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지를 잘라 꽃병에 꽂았을 때의 향기가 자연 상태에서 피는 꽃향기보다 훨씬 짙고 강렬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닙니다. 나무의 생존 본능이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가지가 잘리는 순간, 나무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합니다. 뿌리로부터 물과 양분을 공급받던 연결이 끊겼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 상태로는 머지않아 말라 죽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꽃을 피워 꽃가루를 퍼뜨려야 합니다. 벌과 나비를 불러야 합니다. 종족을 번식시켜야 합니다. 나무는 그 위기의식으로 가진 모든 에너지를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하는 데 쏟아붓습니다.
꽃병 속 동백꽃의 향기가 유독 강한 것은, 따지고 보면 한 생명이 마지막 힘을 다해 내뿜는 간절한 몸부림입니다. 생명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향기.
그것을 알고 나면 꽃병 속 동백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그 향기 앞에서 우리는 좀 더 겸허해집니다. 이 사실에 생각이 멈춘 이후 꽃병에 동백꽃을 꽂는 행위 또한 멈췄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쓰임새들
생강나무는 쓸모 또한 다양합니다. 산골 마을에서 오래도록 삶의 동반자였던 이 나무의 쓰임새는 현대인들에게 거의 잊혔지만, 그 가치는 여전합니다.
여름철에 잎을 따다 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신기하게도 냉장고 특유의 냄새가 사라집니다. 화학 탈취제 대신 자연의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생강나무 잎이 지닌 특유의 방향성 물질이 냄새를 흡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만으로도 냉장고 한켠에 생강나무 잎을 두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가을이 되면 열리는 검붉은 열매는 과거에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동백기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기름은 윤기를 더해주는 천연 헤어 제품이었던 셈입니다.
또한 이 열매를 꾸준히 소량 섭취하면 산후통 완화, 혈액순환 개선,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전해집니다. 피부에 열매 기름을 바르면 어혈 제거와 통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민간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러한 효능들은 전통적인 민간요법에 기반한 것으로,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조들이 이 나무와 함께 살아온 지혜의 축적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흔하기에 더욱 소중한 나무
생강나무는 강원도 야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수종입니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빽빽한 숲 속에서 어린 나무를 조심스럽게 채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면, 이 나무를 가까이 두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흔하다는 것이 하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남아 번성한 나무야말로 이 기후와 토양에 가장 잘 맞는 나무라는 증거입니다. 화려한 외래 수종이 넘쳐나는 시대에, 동백나무는 흔하지만 소중한 나무입니다.
정원이 가르쳐 준 것
전원주택을 짓고 내가 심은 동백나무에서 꽃이 피던 날을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겨울 내내 기다렸던 그 꽃이 마침내 노란 빛을 터뜨렸을 때, 이상하게도 묘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아파트 생활 수십 년간 잊고 지냈던 무언가가 그 순간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 봄이 온다는 것,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는 것이 이토록 크고 단순한 기쁨이었는지를.
도시를 떠나는 것이 두려운 분들에게, 혹은 아직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마음 한켠에 흙냄새가 그립다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올봄, 화단 한켠이든 작은 마당이든, 생강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세요. 내년 봄이면, 그 나무가 먼저 봄을 알려올 것입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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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나울 신광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