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만난 6.25 산증인들
오늘 9월 11일, 파로호 안보전시관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흔히 이곳은 장병들이 안보교육을 받기 위해 찾는 공간이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바로 6.25전쟁의 포화를 직접 겪은 참전 유공자들이 이곳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교과서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살아 있는 역사의 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산증인들, 파로호 안보전시관 방문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안보강연을 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지만, 이날만큼 긴장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보통은 장병들에게 파로호 전투와 화천 전투의 의미를 설명하면 되지만, 이날 청중은 달랐습니다. 바로 전쟁을 직접 치른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30분 정도의 강연이 끝날 무렵, 한 어르신이 손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6.25 때 6사단 7연대에 있었어.”

그분이 올해 아흔셋, 6.25참전 유공자회 춘천시지회 소속 서병표 어르신입니다. 지금은 화천 일원이 7사단의 관할이지만, 전쟁 당시에는 6사단이 이 지역을 방어했습니다. 서 어르신은 이어 “옆에서 연신 포탄이 터지는데, 지금도 생생이 기억나는 건 중공군들이 타고 온 말이 썩는 냄새야.”라고 회상하셨습니다. 짧은 한마디 속에서 전장의 참혹함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서 어르신은 화천 전투의 산증인이었습니다. 그분의 증언은 수많은 기록보다 더 생생했고, 청중들은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만약 그때 6사단이 버티지 못했다면 오늘의 화천은 공산 치하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바로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참전 용사를 기억하는 지역사회
강연이 끝나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최문순 화천군수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강원도의 여러 유공자 모임에서도 그의 이름은 자주 언급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최 군수는 초선 시절부터 참전용사와 파병 용사들에 대한 예우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금까지도 이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각종 복지 사업, 기념행사 등 가능한 범위 안에서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입니다. 그 진정성이 오늘의 화천을 다른 지역과 구별 짓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전시관에 모인 어르신들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듯 보였습니다. 화천이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자부심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이어져 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지만, 오늘처럼 역사와 현재가 맞닿는 순간은 흔치 않습니다. 서병표 어르신의 목소리는 기록이나 영상으로는 전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조국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그의 말 속에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역사는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 고리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합니다.
결론
“잊지 말라!”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만난 참전 유공자들은 우리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한, 그들의 전쟁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화천을 비롯한 각 지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의 의무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최문순 군수의 사례는 그 길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세월을 건너온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평화와 번영의 대한민국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파로호를 지켜낸 이름 없는 청년들과, 지금도 살아 증언하는 노병들의 땀과 피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는 것이 곧 예우이며, 예우가 곧 미래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