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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넉가래 소리에서 배우는 공동체 품격

우리 동네 자랑거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 새벽, 마을 안길에서 들려오는 넉가래 소리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소리는 이웃의 안부이자, 공동체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눈은 매년 어김없이 내리지만, 그 눈을 대하는 태도는 마을마다 다릅니다. 그 차이는 결국 ‘사람’에서 비롯됩니다. 이 글은 한 마을의 제설 풍경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온 공동체 의식과 생활 속 상식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기록입니다.

밤에만 내리는 눈, 그리고 새벽의 넉가레 소리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눈은 왜 밤에만 내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날까지 멀쩡하던 길이, 아침이 되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새벽 5시쯤, 잠결에 들려오는 ‘서걱서걱’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누군가 넉가래로 눈을 치우는 소리였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소리가 겹쳐집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렇게 사람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여덟 명 가까운 주민들이 마을 안길에 모였습니다.

우리 마을 넉가래 부대

누군가는 눈을 치우는 원동기인 ‘불어’를 메고 나왔고, 대부분은 각자 넉가래를 들고 나왔습니다. 염화칼슘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나온 아주머님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누구 하나 제안한 사람도 없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이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가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400미터 마을 안길에 담긴 책임감

큰길에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안길까지는 약 400여 미터가 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입니다.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을 주민들입니다. 그렇기에 눈이 내리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설작업에 나섭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닙니다. 내가 이용하는 길이고, 이웃이 함께 다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순한 이유가 마을 사람들을 새벽 어둠 속으로 안내합니다.

“관공서에서 해 주겠지”라는 착각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두면 읍사무소나 군청에서 제설을 해 주겠지”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관공서의 제설작업에는 명확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국도와 주요 간선도로가 먼저입니다. 그 다음이 지방도, 군도, 농어촌도로 순서입니다.

마을 안길은 늘 마지막입니다. 빠르면 하루, 늦으면 이틀이 훌쩍 지나서야 장비가 들어옵니다. 그 사이 눈은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어, 미끄러운 빙판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되면 제설작업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눈이 내리자마자, 얼기 전에 주민들이 직접 치우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움직입니다.

모두가 함께하지는 않는 현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제설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마을 10가구 중 6가구는 귀농한 가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일에 적극적이고, 제설작업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젊은 귀농 세대 두 집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젊으니까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겠지’라고 이해해보려 해도 설득력이 와 닿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낮에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거의 모든 집에서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두 가구는 여전히 문을 굳게 닫은 채 조용했습니다.

공동체 이전에 상식의 문제

도심 아파트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공동체 의식은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관리사무소가 있고, 경비원이 있고, 늘 누군가 대신 처리해주는 환경에 익숙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공동체라는 거창한 개념 이전에 상식의 문제입니다.

내 집 앞 눈을 치우는 일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선행이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내가 이용하는 공간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일입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한 사람의 무관심이 여러 사람의 불편으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말하지 않는 시골, 쌓여가는 거리감

여기서 시골 사람들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왜 제설작업에 안 나오느냐”고 따져 묻지 않습니다. 지적도 없습니다. 대신 은근히 거리를 둡니다. 말을 섞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균열이 생깁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은 오해와 불신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참여가 신뢰를 만들고, 작은 무관심이 골을 남깁니다.

집 앞의 눈을 치우지 못한 어느 장관의 사과

몇 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장관이 외국 출장 중 폭설이 내려 자신의 집 앞 눈을 치우지 못했습니다. 귀국 후 그는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공무 중이었다는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직자로서,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우선시 했습니다. 이 일화는 단순한 미담이 아닙니다. 집 앞의 눈을 치우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사과하는 태도가 먼저였습니다.

결론

우리나라는 이미 여러 지표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제도와 숫자가 아니라 시민의식에서 완성됩니다. 새벽의 넉가래 소리는 법이나 규정이 아닌, 생활 속 책임감에서 나옵니다.

눈이 내리면 누군가 대신 해 주기를 기다리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는 사회.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집 앞 도로에 쌓인 눈을 함께 치우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이웃을 만나고, 공동체를 확인하며, 사회의 품격을 쌓아갑니다. 새벽의 제설작업은 노동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솔직한 풍경입니다.【화천인사이트 발행인, Publisher@hwacheonin.com】